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덴의 루이제 (문단 편집) === 러시아의 대공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mpress_Elisabeth_Alexeievna_by_Vigee-Le_Brun_(1795,_Castle_of_Wolfsgarten).jpg|width=100%]]}}} || ||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 대공비, 1795년 || 1793년 9월 28일, 14살의 루이제는 한 살 연상인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 대공과 결혼했다. 불행히도 어리고 순진한 루이제는 러시아 궁정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고향에 비해 러시아 궁정은 매우 화려하고 엄격했으며, 동시에 문란했다. 일단 당시 황제였던 예카테리나 2세부터 남성 편력이 화려하기로 유명했다. 그리고 궁인들은 부정한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한번은 예카테리나 2세의 애인 주보프가 어린 루이제를 유혹하려 든 적도 있었다. 혼란스러운 궁정에서 겉돌던 루이제는 동생 프리데리케가 고향으로 돌아가자 향수병에 시달리며 우울해했다. 루이제는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있을 때만 편안함을 느꼈다. 이 시기에 루이제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를 유일하게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인 남편이 없었다면 나는 천 번은 죽었을 거에요."라고 써서 보냈다. 그러나 부부의 애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루이제는 결혼한지 5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아이를 갖지 못했으며, 시아버지인 [[파벨 1세]]와 사이가 안 좋았다. 그러던 중 동생 [[바덴의 프리데리케|프리데리케]]가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4세 아돌프]]와 결혼하면서 루이제는 난처한 처지가 되었다. 구스타브 4세 아돌프는 과거에 루이제의 시누이인 [[알렉산드라 파블로브나 로마노바|알렉산드라 파블로브나]] 여대공과 혼담이 있었다. 그러나 개종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약혼을 거절했고, 이 때문에 러시아 황가의 체면이 크게 손상되었다.[* 심지어 정중하게 거절의 뜻을 전한 것도 아니고 약혼 발표날에 약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덩그러니 남겨진 알렉산드라와 러시아 황가의 어른들은 이 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오죽하면 [[예카테리나 2세]]의 죽음을 앞당긴 원인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 그런데 루이제의 동생이 그런 구스타브 4세 아돌프와 결혼하면서 루이제는 시댁 식구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다. 이처럼 여러 문제가 있는 상황 속에서 루이제와 알렉산드르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애정이 식은 부부는 각자 애인을 두기 시작했다. 1796년에 루이제는 남편의 친구이자 [[폴란드 왕국|폴란드]] 귀족인 아담 차르토리스키와 교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뒤인 1799년에 드디어 첫 아이를 낳았다. 부모는 모두 금발에 파란 눈이었으나 아기는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궁인들은 아이의 머리카락과 눈 색깔이 차르토리스키와 같다고 수근거렸다. 아기는 돌이 지나고 한 달 만에 사망했다. 부부는 크게 낙담해 서로를 위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